찰나의 순간이 송두리째 바꾼 삶의 방향
안녕하세요, 저는 매일 서울의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기사입니다. 이 직업을 천직이라 여기며 버스 운전대를 잡은 지 어느덧 수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울 시내버스로 이직했을 때의 그 감격과 설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매일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도심의 복잡한 길을 누비는 일은 제게 단순한 직업을 넘어선 엄청난 자부심이자 책임감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생명을 책임지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저는 언제나 '안전 운전'을 마음속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 견고했던 자부심과 일상이 한순간의 사고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제 삶의 방향까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끌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사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했던 오후의 운행 중에 발생했습니다. 저는 왕복 10차선에 달하는 대로의 버스 중앙차로를 따라 녹색 신호에 맞춰 직진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앞의 전방 신호등은 명확하게 녹색을 비추고 있었고, 횡단보도에는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지 않은, 즉 보행자에게는 '건너지 마시오'를 의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인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 갑자기 중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예고도 없이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뛰어들었습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녹색불이 점등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습니다. 제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뒤엉켰지만, 몸은 이미 본능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온몸의 힘을 실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버스는 굉음을 내며 급정거했습니다. 뒷좌석에서 승객들의 동요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제 시선은 오직 무단횡단하는 아이들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과 직접적인 충돌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과 아찔함은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졌습니다. 사고는 그렇게 발생했고, 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막막함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싸였습니다.
그 막막함 뒤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사고 자체보다 더 거대한 후폭풍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충격, 그리고 사고 수습 과정에서 겪었던 경찰 조사와 불안감은 제 마음을 깊이 병들게 했습니다. 밤잠을 설쳤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사고 순간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결국 저는 더 이상 혼자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만 했습니다.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살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제 몸은 급격히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고, 이유 없이 피곤했으며,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믿기 힘든 진단을 받았습니다. 바로 *당뇨병*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저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사고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충격이 당뇨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당뇨병은 우리 몸이 혈액 속 포도당(혈당) 수치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만성 질환입니다. 인슐린이라는 중요한 호르몬이 충분히 생산되지 않거나, 생산된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하죠. 인슐린은 혈액 속의 포도당을 세포로 운반하여 에너지로 사용하게 돕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포도당이 혈액 속에 계속 쌓여 여러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고 이후 급격한 체중 감소를 겪었습니다. 무려 20kg 이상 몸무게가 빠지면서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체중 감소는 당뇨병의 주요 증상 중 하나로, 인슐린 부족으로 인해 세포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 몸속의 지방과 단백질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으려 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극심한 갈증, 수시로 화장실을 가게 되는 소변량 증가, 만성 피로 등의 다른 당뇨 증상들도 저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혔습니다.
이 사고와 그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해 저는 산재(산업재해) 신청을 했고, 다행히 승인되어 약 9개월가량의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정신과 치료와 당뇨 관리를 병행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온전히 집중했습니다. 매일 혈당을 측정하고, 식단 관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과 섬유질 위주의 건강한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매일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거나 가벼운 근력 운동을 병행하며 혈당 조절에 힘쓰고 있습니다. 인슐린 주사를 맞거나 약을 복용하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제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리 과정은 인내심과 꾸준함을 요구하지만, 작은 혈당 수치 변화에도 희망을 느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부터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버스에 앉아 서울의 도로를 달리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저는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저를 기다려준 동료들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은 저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저에게는 어떠한 혐의도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저는 이 사고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도로 위 안전의 중요성, 특히 보행자들의 무단횡단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시련 앞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이겨내야 하는지, 그리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비록 몸은 아프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당뇨병을 안게 되었지만, 이 시련을 통해 저는 정신적으로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솔직한 이야기가 어쩌면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사고를 평생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러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욱 철저하게 안전 운전에 힘쓰며 저를 믿고 탑승해주시는 승객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뇨병이라는 평생의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유익한 글들을 올려보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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